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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그런이야기

[IT]지상 중계, 소프트웨어 개발자 토론회.

August 25, 2006

지상 중계, 소프트웨어 개발자 토론회.

두 차례에 걸쳐 소프트웨어 산업의 위기를 집중 분석한 데 이어 이번 호에는 8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비트컴퓨터 대강당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개발자 토론회를 지상 중계한다. 자바개발자협의회 주최로 열린 이번 토론회에는 분야별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실력의 개발자들이 모였다. 업계의 전설로 꼽히는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은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현장 개발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지면에 담아낸 것도 처음이다.

참석자 명단. 옥상훈 한국자바개발자협의회 회장, 박지훈 볼랜드포럼 대표, 양병규 한국볼랜드커뮤니티연합 대표, 박경훈 훈스닷넷 대표, 유승호 와글네 대표, 서학수 데브피아 ASP.Net 시삽, 손영수 데브피아 아키텍쳐 포럼 시샵, 문태준 데이터베이스사랑넷 대표, 송상준 데이터베이스사랑넷 LDAP시삽, 김정식 오라클클럽 대표, 허광남 OKJSP 대표, 이원영 자바서비스넷 대표, 최상훈 오브젝트월드 대표, 권순선 KLDP대표, 이창신 아파치 커미터, 엄철진 플래시8코더스 대표, 채재영 플생사모 대표, 양주일 피플 대표.

옥상훈 자바 좀 하면 몸값 오른다는 말 나돌던 게 벌써 6년 전이다. 그런데 자바 개발자들 몸값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여섯시에 퇴근 한 번 해보는 게 소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늘 앉아만 있으니 아랫배도 나오고 허리 통증에 위장병, 치질 등등 온갖 개발자 병을 앓는다. 애인이나 가족들과 불화도 심각하다. 진짜 문제는 이런 생활을 하면서도 아무런 비전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코딩 정년이 35세라는 말도 있다. 원청 회사들은 PM(프로젝트 매니저) 한 명에 중급 이상 개발자를 두 명 이상 쓰지 말라는 방침을 정하기도 한다. 말 잘 듣고 싸게 부릴 수 있는 초급 개발자만 찾는다. 고급 개발자가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다.

허광남 납기일이 터무니없이 짧게 잡힌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프로젝트 규모를 정확하게 산정하지 않고 무리하게 잡았다가 막판에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납기일을 못 지켜서 작업 일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다. 그래서 개발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최상훈 이렇게 납기일이 촉박하게 잡히는 데는 관리자나 영업사원 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실제로 얼마나 걸릴 거라고 예측을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희망 사항을 반영하는 것이다. 특히 SI 프로젝트의 경우 분석하고 설계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잡아먹은 시간을 결국 막판에 야근과 밤샘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시간도 부족하고 인력도 부족하니까 결국 그만큼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알고리즘을 고민하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적당히 카피 앤 페이스트로 때우는 것이다. 개발자들 실력도 늘지 않고 당연히 처우도 개선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이라면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채재형 납기일을 잘 맞추는 게 개발자들 실력으로 여겨진다는 것도 문제다. 중간 단계에서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는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게 안 되니까 야근이나 하다가 막판에 못하겠다고 나가떨어지는 거다.

엄철진 플래시쪽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 일정을 잡을 때 아예 야근을 고려해서 잡는다. 게다가 작업하다보면 기획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업무가 계속 늘어난다. 밤을 샐 수밖에 없다. 8명이 4천만원에 3주짜리 프로젝트를 맡는 경우도 있다. 최소 경비도 안 되는데 그거라도 서로 따내려고 프로젝트 기간을 경쟁적으로 줄이는 상황이다. 갈수록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것 같다.

박경훈 병역특례도 문제다. 일하지 않으면 군대에 끌려가야하기 때문에 조건이 안 좋아도 버티게 된다. 이 사람들이 갑을병정무기 이하의 노동조건을 감수하면서 업계의 평균 노동조건을 끌어내리고 있다.

유승호 개발자들을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첫째는 일을 즐기는 부류, 둘째는 일을 열심히 하는 부류, 셋째는 그냥 시간을 때우는 부류다. 문제는 일을 즐기는 부류 때문에 나머지 부류가 묻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야근 수당도 안 받으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야근을 한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야 한다. 근무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하고 제 시간에 퇴근해야 하고 부득이하게 야근을 할 경우 초과 근무수당을 요구해야 한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개발자들의 처우는 결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이원영 조금 달리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밤새면서 일하는 게 좋다는 개발자들도 많다. 야근 수당을 충분히 받고 밤새 일 끝내고 다음날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다면 굳이 밤샘 근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런 기본적인 조건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밤샘은 얼마든지 즐겁게 할 수 있지만 그만큼 보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창신 계산해 봤더니 우리는 1주일에 80시간 이상 일한다. 남들은 주 5일 근무라는데 우리는 주 7일 근무를 한다. 물론 즐거우니까 하는 일이다. 6시에 퇴근하는 게 꿈이라지만 우리는 아침 6시까지 일하는 게 꿈이다. 안 잘 수만 있으면 안 자고 일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 보면 인간관계는 엉망이 되는데 통장 상태는 좋아지더라.

서학수 납기일을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막판에 가면 일이 몰리기 마련이다. 진짜 문제는 프로젝트를 끌고 나갈 실력 있는 개발자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코더는 많은데 디벨로퍼가 적고 아키텍터는 거의 없다. 그러니까 늘 우왕좌왕이다. 막판에 가서 이 산이 아닌가봐 하는 식이다. 그래서 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시간에 쫓기고 결국 돈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다. 다른 업체의 고급 개발자에게 SOS를 치거나 다른 업체에게 다시 넘겨주기도 한다.

이창신 개발자 천국이라는 구글을 봐라. 거기도 24시간 내내 불이 안 꺼진다. 간식거리가 널려있고 샤워실에 체육관에 온갖 복지시설을 갖추고 있다. 결국 회사를 떠나지 말고 내내 일만 하라는 거다. 구글은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의 80%만 회사 일로 쓰고 20%는 자기 계발에 쓰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내 콘테스트라도 하면 상금을 한두 푼도 아니고 100만달러씩 건다. 그러니까 24시간 내내 일하는 것이다. 근무시간이 짧고 길고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느냐가 문제다.

이원영 교통비나 여러 경비, 이를테면 공부에 필요한 도서 구입비, 학원비, 또는 어학연수, 업무에 필요한 휴대전화 비용, 경조사, 식비 등등 이런 것들을 법인 경비로 처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휴가도 법정휴가만큼 챙겨서 가야 한다. 기업주를 상대로 요구하고 항의하고 받아내야 한다. 악덕 기업주는 정보를 공유해 추방해야 한다.

박경훈 CEO나 경영진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 개발자들 평균 연봉이 미국의 3분의 1도 안 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외국에는 나이 든 개발자도 많고 아이디어나 실력만 좋으면 개발자도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프로젝트가 성공해도 개발자들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 기획자나 경영진에게 모두 돌아간다. 그러면서 연봉 깎을 생각만 한다. 이런 풍토에서는 대박 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없다.

이원영 개발자들 가장 큰 불만은 업무량이 많고 퇴근이 늦은 것 보다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못한다는 것이다. 뭔가 제대로 개발해보고 싶은데 정작 늘 하는 일은 납기일에 맞춰 소스 짜맞추기다. 여기저기서 복사해다가 따붙이기, 그나마 며칠씩 밤샘을 해야 겨우 끝낼 수 있는 과도한 업무량. 그건 개발이 아니라 노가다다. SI가 개발자들을 지치게 한다.

이창신 SI를 줄여야 한다. 안 할 수는 없겠지만 살아남으려면 줄여야 한다. 갈수록 사람이 덜 드는 개발이 늘어나고 있다. 툴과 관리가 자동화되고 있다. 개발자 수요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남아있는 개발자들 근무시간도 줄어들 거다. 개발자로 살아남으려면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거다. 에이직스나 웹 2.0, 매쉬업 등등 새로운 비즈니스를 고민해야 할 거다. 이제 직접 서비스를 만들어서 이윤을 얻는 인프라와 플랫폼이 중요하게 됐다. 프로젝트 따내고 납기일 맞추고, 공기는 생명이고 품질은 자존심, 그런 제조업 마인드로는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선택을 해야 한다.

박경훈 조금 비약해서 이야기하자면 요즘은 개발자들이 택시기사처럼 되는 것 같다. 엔진에는 관심 없고 운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봐라. 돈 버는 건 로우 레벨 기술 가진 현대자동차다. 택시기사들은 얼마나 버나. 코어 기술을 모르면 종속될 수밖에 없다.

박상훈 언젠가부터 개발자 커뮤니티에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세미나에도 사람이 안 모인다. 다들 이제는 스킬 업을 해봐야 연봉이나 신분 상승이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개발자들 실력이야 천차만별이지만 실제로 프로젝트에서 요구하는 기대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SI는 정말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는 것 같다. 고만고만한 기술과 노하우로 버티는 것이다. 공부도 필요 없다. 솔루션을 컨설턴트가 독점하고 있고 개발자들은 스펙트럼이 넓지 않다. 결국 대안은 오픈 소스라고 생각한다.

이창신 얼마 전 오페라 한국지사에서 사람을 구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웹 브라우저 개발 경력이 있고 표준 스펙을 잘 알고 무엇보다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하고, 이런 사람을 못 찾겠다는 거다. 아마 연봉이 6천 이상은 됐을 거다. 이렇게 다양한 니즈가 얼마든지 있다. 수요는 있는데 정작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공 분야를 만들고 틈틈이 더 깊이 파고들어라. 구글에 검색 되도록 블로그를 많이 써라. 그래야 기회가 온다. 오픈소스에 참여하는 것도 좋다. 헤드헌터들도 오픈소스 커미터 정도 되면 실력을 인정해준다. 프로젝트 리더가 될 자격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리=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취재 후기 / 실력 탓 보다는 구조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

이날 토론회의 결론은 이상하게도 경력과 실력을 더 쌓아야 한다는 쪽으로 갔다. 경력과 실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고 잘 쌓으면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개발자들이 실력을 쌓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도 있다. 부당한 노동조건을 견디지 못해 더 좋은 회사로 옮겨가면 끝인가. 남아있는 사람과 당신의 뒤를 이을 후임자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토론회 참석자들은 경력과 실력을 쌓고 업계 최고 수준의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이날 결론은 너희도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처럼 되라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실력이 안 되면 부당한 조건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도 들렸다.

푸념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이들은 일이 즐겁기 때문에 밤샘을 마다하지 않는 그야말로 순수한 공돌이들이다. 문제는 이원영 대표가 지적하듯, 아무리 일이 좋다고 한들 부당한 노동조건을 마냥 감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게 결국 개발자 전체를 죽이는 길이다.

갑을병정무기까지 내려가는 하도급 문제나 재벌 계열 대기업의 내부 거래 문제, 공공부문 저가입찰 제도의 문제 등도 짚어봐야겠지만 의제로 거론되지도 못했다. 구조적인 대안이 필요하겠지만 조직화할 주체가 마땅치 않고 대부분 개발자들은 당장 납기일을 맞추기에도 바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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